무언가 만들어내고 있는 곳은 시끄럽게 마련이다. 특히나 방음설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곳이라면 더더욱.
  샤아는 아크시즈 내에 형성된 지 얼마 안 되는 MS건조구역을 돌아보면서, 어떤 물자를 만들어내면서 감소되는 엔트로피란 모두 소리로 전환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미처 끝내지 못한 공사소음이 사방에서 귀를 때려대는 통에 머리까지 멍했다.

  "대령님, 이거 쓰십시오."

  샤아와 같이 구역 내를 걷고 있던 사관 하나가 샤아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응? 아니...괜찮다."

  내민 것을 보니 귀에 끼우는 작은 소음기였다. 샤아는 무심코 받아들려다가 본인이 쓰려던 것을 자신에게 주는가 싶어 사양했다.

  "괘념치 마시고 쓰십시오, 저흰 이미 익숙하니까요. 대령님은 초행이시지 않습니까."
  "음..."

  조금 망설이던 찰나, 어디에선가 기익기익 하고 철판을 긁는 듯한 새로운 소리가 이미 들리던 소음 사이를 뚫고 길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잠자코 소음기를 받아 들고 귀에 끼웠다.
  그러나 소음기라고는 해도 모든 소리를 차단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귀가 시끄러운 것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뒤따르던 사관들은 차단되지 않은 소리에까지도 이미 익숙해진 듯 농담까지 주고받는 듯 했지만 샤아는 소음에 지친 나머지 사관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그저 건성으로 보아 넘기는 자신을 자각하며 중얼거렸다.

  "감독이 잘 될 리가 없다......."

  통상적으로 이런 곳의 감독을 영(領)급이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중앙 부서 출신 대령인 샤아가 감독관으로 아크시즈 주변 지역으로 나와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이곳이 곧 바로 옆에 있는 자재 연구소 산하로 조직계통이 옮겨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대개의 사관들은 연구소 산하로 소속되는 것을 좌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공장장과는 또 다른, 연구소와 공장 사이를 조율하는 관리자도 현장의 사관들 중에서 선별하여 임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 임명은 꽤나 결정이 어려울 듯 했다.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타인이 감독하기 힘든 이런 거친 현장의 상황보고 일체를 한두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격이다. 뭐 연방 같은 낡은 체계를 가진 정부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때문에 샤아는 현장 방문의 목적과 함께 현장 사관들에 대한 탐방의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소음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지 않은가.
  샤아는 귀가 멍해지다 못해 아파오는 것을 꾹 참고 공장지대의 사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떠셨습니까? 대령님."

  밖으로-아니, 아크시즈의 더 깊은 내부로-나오자마자 한 사관이 질문을 던졌다.

  "시끄럽군."
  "그러셨을 겁니다. 여기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소음 구조로 건설된 것이 아니었나?"
  "설계는 시끄럽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미완공입니다. 새로운 소음 구조는 공기(工期)가 좀 걸리기 때문에 일단 MS건조에 필요한 부분만 완공시킨 겁니다. 건다리움 감마의 실용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반드시 완공을 시켜야 한다는 연구소 측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지시? 협상을 한 게 아니고?"
  "아 그게, 아시다시피 연구소 산하가 될 처지라서. 상위 부서의 권고사항을 거절한다는 게 쉽지 않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연구소 측의 과용이다. 연구소에서는 이상적인 시한을 제시한 뒤에, 우선 실무협상을 해보았어야 했는데."

  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관들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샤아는 자신을 둘러싼 사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다짐하듯 말을 이었다.

  "연구소에 실무진에 대한 배려를 한번 다짐해 두겠다."

  지온계인 데라즈 플리트를 지원하는 일은 시급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무자들의 손이 느려서는 절대 곤란했다. 따라서 연구소 산하로 들어가는 것은 좌천이 아니라 그들 손으로 건다리움 감마로 된 첫 기체를 생산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샤아는 사관들의 밝아진 표정을 보면서, 그가 여기에 와서 해야 할 일들 중 하나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                                   *

  며칠이 지나, 샤아는 이제 이곳의 일을 슬슬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보고들을 대충 정리했다.
  공장지대의 사찰은 몇 번의 현장방문과 도면의 브리핑으로 끝을 맺었고, 연구소와의 실무협상을 주도할 관리직 사관의 후보도 두 명 정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임명 자체는 돌아가서 인사회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두세 명 선으로 선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얼추 정리를 끝내고 단말기의 모니터를 접어서 닫을 무렵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키그난 중위입니다, 대령님."
  "아, 들어오게."

  샤아는 일어나서 키그난 중위를 맞았다. 키그난 중위 자신은 모를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샤아의 손에 의해 후보로 선별된 두 사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후보로 그보다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계급도 현재 높은 윈스턴 대위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지구에서 태어난 데다 연방군 출신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키그난 중위도 슬슬 대위로 진급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샤아는 개인적으로 키그난 중위를 선호했다. 물론 '개인적으로'일 뿐 인사회의의 결과에 따를 예정이었지만.

  "무슨 일인가?"
  "말씀하셨던 현장의 신상명세 자료입니다. 본부에서 막 도착한 것입니다."
  "아, 고맙네."

  샤아는 키그난이 내민 보고서를 받아들고 몇 장을 넘기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샤아는 보고서를 넘기다 말고 나가려는 키그난을 붙들었다.

  "네?"
  "윈스턴 대위의 부인의 처녀 때 이름이 베라리사 벨라스케즈인가?"
  "그렇습니다. 그분을 알고 계십니까?"
  "잊을 리가 있겠는가. 그 아가씨를."

  샤아는 미소를 지었다. 샤아가 사관학교를 다니기 이삼 년 전부터 그가 입학할 시절까지의 생도 중 학교 근처의 벨라스케즈가(家)를 모르는 생도가 있다면 그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다. 그녀는 그 정도로 유명한 아가씨였다.
  사관학교라는 곳의 특성상, 미모의 아가씨가 사관학교 주변의 군 사택에 산다면 그 집을 모르는 생도는 없게 마련이다. 혹 모르더라도 졸업할 때쯤이면 다들 알게 되는 것이다. 벨라스케즈 가의 베라리사 양에게 날아가는 연애편지라던가 선물은 매일 그 집 우편함을 가득 메우고는 했었다. 가르마 자비의 눈에 이미 이세리나라는 다른 아가씨가 들어차 있지 않았다면 그도 아마 그 행렬에 끼었을 것이다. 그리고 샤아가 만일 복수라는 집념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지 않았다면 그까지도.
  그녀는 어머니 같은 포근함과 어린아이 같은 발랄함을 함께 갖춘 근사한 아가씨였다. 그러나 베라리사 양은 그 숱한 생도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는 법이 없다가, 샤아가 사관학교를 들어간 지 일년쯤 지나 연방에서 갓 넘어온 어떤 군인과 결혼해 버렸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생도들의 실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군인이 윈스턴 대위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윈스턴 부인께서 유명한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처녀시절에 숱한 사관생도들을 울렸던 분이지. 하지만 자네 기수라면 아마 모를 걸세. 한번쯤 다시 만나보고 싶은데."

  샤아는 보고서를 다시 넘기며 키그난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다 문득 손을 멈추었다.

  "...?"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

  샤아는 서둘러 다음 장으로 보고서를 넘기며 말했다. 윈스턴 대위의 신상명세가 그 다음 장에서 끝나고 있었다. 샤아는 보고서 위에 나열되어 있는 자질구레한 글들을 무심히 스치며 키그난에게 말했다.

  "이제 나가봐도 좋네."
  "네. 그럼."

  키그난이 방을 나가자 샤아는 재빨리 손을 놀려 다시 앞장으로 서류를 넘겼다.
  그리고 그 장을 다시 한번 곰곰 살펴보기 시작했다.

                                                  *                                   *

  벨라스케즈 양, 아니 윈스턴 부인을 만나게 되는 날은 의외로 빨리 왔다.
  MS건조구역 내부에 임시로 마련되었던 그의 방 대신 연구소 건물에 마련된 방으로 옮기기 위해 전에 쓰던 방을 대충 정리하고 나오던 날이었다. 막 문을 닫으려던 샤아는 저쪽에서 다가오는 여성의 실루엣을 보고 그녀가 누군지 금방 생각해냈다.

  "윈스턴 부인 아니십니까?"
  "기억하고 계시군요, 대령님."
  "물론입니다. 방으로 들어가시죠. 정리가 다 끝나 버려서 텅 비어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밖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끄럽군요."

  때맞춰 벽 두 개를 건너서 있는 작업 지구로부터 굉음이 들려오자 샤아는 그녀의 말이 맞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공원 근처로 가다 보니 나무 아래로 깔개를 깔고 앉아 있는 윈스턴 대위와, 그의 아들인 듯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령님."
  "아, 대위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 근처로 오래간만에 피크닉을 온 것 뿐입니다. 키그난 중위가 아내를 아신다는 얘기를 하길래 일부러 아내를 보냈지요. 앉으십시오."

  대위는 잔디밭에 앉아있던 위치에서 조금 물러나며 자리를 권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샤아는 반가운 마음에 선뜻 그녀를 따라온 것을 후회했으나, 여기까지 와서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 싶어 그냥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까부터 샤아의 얼굴을 주시하던 소년이 양산을 접고 있는 윈스턴 부인에게 다가가 안기며 말했다.

  "엄마, 저분이 붉은 혜성이에요?"
  "그래, 우리 지온의 영웅이시란다. 인사하렴."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샤아 아즈너블 대령님! 저는 죠르다노 B. 윈스턴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들이죠."

  소년의 씩씩한 인사에 윈스턴 대위의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덧붙여졌다. 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꽤 똑똑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만나서 반갑다, 윈스턴 군. 몇 살이지?"
  "6월에 여덟 살이 돼요. 그냥 죠르다노라고 부르세요."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 되겠구나."
  "아빠도 늘 그러세요."

  소년은 샤아의 친절한 말투에 금새 마음을 푼 듯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 후 윈스턴 대위와 죠르다노가 공과 글러브를 들고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캐치볼을 시작할 즈음, 샤아는 윈스턴 부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똑똑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 아버지를 닮았나봐요. 그래도 대령님만큼 되지는 못하겠죠."
  "무슨 과찬의 말씀을."

  샤아는 낮게 웃었다. 윈스턴 부인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샤아를 바라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뭘 말입니까?"
  "저이를요."

  윈스턴 부인의 눈이 그녀의 남편 쪽을 향했다.
  그 순간 샤아는 기꺼웠던 기분이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연구소와의 연계 작업에는 책임자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 일을 맡고 있는 분은 윈스턴 대위님이 아니십니까."
  "네, 하지만 알고 계실 겁니다. 저이는 연방군에서 온 사람이지요."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샤아는 얼마 전에 보았던 윈스턴 대위의 신상 명세를 떠올렸다. 물론 윈스턴 대위는 연방에서 넘어온 사람이었다. 연방군 내에서 그의 경력은 작업용의 MS제작진행 쪽으로 대단히 화려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준비를 비밀리에 하고 있던 지온에서는 그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넘어오자마자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당시의 벨라스케즈 양과 결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온으로 온 것은 부인 때문입니까?"

  부탁을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그녀의 입가에서는 자랑스러운 듯한 미소가 잠시 흘렀다 사라졌다.

  "네. 전 저이가 연방에 있던 시절부터 사랑하고 있었지요. 갈등이 좀 있었겠지만, 저이는 결국 내게로 와 주었습니다. 죠르다노를 가진 것을 알자마자요."
  "그랬습니까. 과연 사관학교의 생도들에겐 관심이 없으실 만 하셨군요."
  "네."

  윈스턴 부인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성의 얼굴인가.

  "그러니 저이를 좀 부탁드립니다. 저 때문에 저이의 일에 피해가 가게 되는 것은......."
  "부인,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샤아는 윈스턴 부인을 될 수 있는 대로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의 대답에 조금 위안을 받았던지, 그녀는 고개를 들고 샤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그럼 확답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러나 정작, 샤아는 그녀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에게 책임자를 결정한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 윈스턴 대위를 강력 추천한다면 군 인사회의는 크게 결정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의 인사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처리되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건다리움 감마로 만들어 내는 최초의 기체가 아닌가.
  지금 나에게 청탁이란 것을 하고 있는 건가.
  연방 출신의 군인과 살고 있으면 이런 일에도 거리낌이 없게 되는가?
  샤아는 언짢은 마음에 어제 보았던 신상명세를 다시 떠올리며 대꾸했다.

  "그건 부인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윈스턴 대위님께서 연방에서 아내를 버리고 올 때, 이미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들은 어느 정도 감안했을 테지요."

  그녀는 순간 멈칫하고 샤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알고 계셨군요."
  "당연히 서류에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쪽에서 이혼 처리를 하지 않는 한, 이중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요."
  "시기가 여의치 않았어요. 지온으로 오는 시기를 더 늦추기가 어려웠거든요. 당시 '그녀'는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있었지요."

  그것은 샤아가 미처 모르던 사실이었다.
  샤아는 그가 느끼는 놀라움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럼, 대위의 아이가 연방 쪽에도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럼 그의 가족, 아내와 아이는 어떻게 되었던 겁니까?"

  윈스턴 부인은 내리깔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샤아가 그녀에게서 여태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그의 '가족'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는 저고, '아이'는 죠르다노이지요...더 누구를 물으시는 것인가요?"

  칼날처럼 날카로운 권위를 가진 목소리였다.
  샤아는 뭔가 더 얘기를 진행시켜 볼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눈을 보고 대꾸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 눈은 그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사랑만을 하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않는 눈.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인. 저는 그만 가봐야 될 것 같군요."

  샤아는 윈스턴 대위와 그의 아들이 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윈스턴 부인도 그의 분위기를 눈치챈 듯 더 잡지 않았다.
  공원에서 서둘러 나오며 샤아는 벨라스케즈 양을 그런 사람으로 만든 그녀의 남편에 대한 반감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지온 또한 공화국에서 공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연방 못지 않은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굳이 공국으로 넘어간 사실을 걸고넘어지지 않더라도 조만간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생성에서 안정으로 진행되면서 언제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사회의 엔트로피란 항상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조직은 비대해지며 종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현상이 연방 출신에 의해 가속화되는 것은 왜 이렇게도 껄끄러운 것일까. 왜 깨끗한 물을 한 마리 미꾸라지가 흐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샤아는 저도 모르게 흐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연방의 쓰레기가 지온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걸까? ...라라아...."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라라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2009/02/10 15:33 2009/02/10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