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風梅花', '꽃이 내리는 밤'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안주국의 왕좌에는 조회 때 늘 칸막이를 두었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존의 자리를 높이기 위함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삼가 왕위에 오른 분을 어찌 일개 신하 된 자가 마주 볼 수 있으리오. 행여나 눈을 잘못 두어 존영을 마주하는 불충이 일어난다면 이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리. 따라서 이를 애초부터 원천봉쇄하여 아래 놓인 자를 보호하는 것이 왕 된 자의 마땅하고 당연한 배려일 것이다.
“라는 건 핑계고, 사실 그 멍청이가 조회에 잘 안 나오니까 그런 거잖아.”
“대놓고 ‘왕께서 항상 땡땡이를 치셔서 우리가 빈 의자만 쳐다보기 눈꼴십니다. 차라리 가리는 게 낫지’ 할 수는 없잖습니까? 저희도 생각 많이 했다고요.”
사관 두어 명과 함께 칸막이를 오른쪽으로 한 치 정도 옮기고 있던 슈코우는 어이없어하는 엔키의 항의에도 아랑곳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연왕이 화려한 것을 즐기지 않다 보니 그 흔한 자개나 보석 같은 장식조차 거의 붙어 있지 않았지만, 오동나무 한 그루를 뚝 잘라 만든 것이 절대 가벼울 수는 없었다. 허투루 보여도 500년 치세 중 근 400년 가까이 왕좌를 가리던 물건이다. 장정 셋이 고작 반 치를 움직이는데도 끙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이쿠.”
“그거 힘들어?”
“됐습니다. 저리 가십시오. 훠이.”
엔키가 나라도 도와줄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슈코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다가오려는 기린의 발걸음을 막았다.
“왜 쫓아내! 내가 파리냐?!”
“작업에 방해되는 정도를 놓고 보면 타이호든 파리든 큰 차이도 없습니다만.”
“방해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바로 앞에서 얼쩡거리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 천장이든 벽이든 상관없으니 멀찍이 떨어져서 붙어만 계시지요.”
말을 마친 슈코우는 상사의 신랄한 어투에 식은땀을 흘리고 서 있는 사관들을 독려해서 남은 반 치를 마저 옮겼다. 물론 어린아이 모습의 엔키라지만 본체는 분명 성년이 한참 지난 기린이므로 인간에 비해 힘이 달리거나 하지는 않을 터. 그러나 도움이 될지 말지는 둘째 문제다. 연국을 대표하는 기(麒)가 왕도 아닌 신하의 일로 큼지막한 문짝을 들고 낑낑대는 꼴을 보인다면 하루도 안 되어 엔키를 괴롭히는 원흉으로 지목된 그는 사방팔방의 항의를 받을 게 뻔했다. 역마살이 든 왕의 행태를 규탄하다 사약을 받는다면 모를까, 직무수칙의 미준수로 미움받는 건 질색이었다. 지킬 것은 지키며 살고 싶다.
겨우 일을 마치고 어영차 하고 허리를 펴고 보니 엔키의 얼굴이 부루퉁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불만 있으십니까.”
“이래 봬도 기린이다? 나 힘 세다고.”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만 파리 취급이나 하고-라며 중얼거리는 엔키의 투정에 그는 조금 난처해졌다. 500년간 한결같이 나랏일을 해온 그로서는 내킬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기린과 왕도,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그때마다 뭔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며 우기는 모습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놀다 지치는 것도 진력이 난다더니, 주업이 백수다 보면 때로는 일도 재미난 놀이처럼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오는 모양이었다.
“도움이 되시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폐하께 달려가 왕 없이 조회를 진행하는 신하들의 고충을 좀 전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나름 중요한 건이 올라와 있던 참입니다.”
“잔소리라면 사백 년 전부터 계속했다고? 그 멍청이가 꿈쩍도 않으니까 그렇지.”
“하긴 왕께서 계셔봐야 농담이나 따먹고 회의 안건에는 한 줌 도움도 되시지 않겠지요.”
재위 초반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최소 주에 한 번 정도는 회의에 앉혀 본 적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의자에 옆으로 드러누워 과자를 씹으며 술 품평, 안주 요리법, 벌레를 갈아 만드는 염색약 같은 이야기나 떠들면서 안건 결재는 단 한 가지도 하지 않으려는 꼴을 몇 년이나 본 끝에 결국 왕이야 있든 없든 일은 일대로 진행하기로 신하들끼리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심지어 왕은 그 와중에도 궁을 비웠다가 달포나 지나 해당 안건에 대한 결재를 받아들었는데, 무표정하게 기다리는 슈코우 앞에서 서류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두 번 보고 나서 껄껄대며 다른 서류를 다 젖힌 채 그 서류에만 옥새를 찍어 눌렀더랬다.
배알이 꼴리는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며 눈살을 찌푸리던 슈코우에게 사관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종백님. 여기가 좀 한쪽으로 밀린 것 같습니다만.”
“어? 그랬나? 다 옮겼다고 생각했더니. 좋아. 한 번만 더 하지.”
집중하지 않고 옮겼던 탓인지 과연 사관의 말대로 칸막이가 정했던 자리보다 살짝 오른쪽 앞으로 나가 있었다. 그대로 두어도 굳이 상관없을 정도이기는 했으나 기왕지사 시작한 일, 확실하게 끝을 보려는 마음에 슈코우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구부렸다. 그때였다.
“아! 이번엔 내가 할래! 이쪽?”
“으악, 타이호! 손 떼십시오!”
쏜살같이 다가온 엔키가 슈코우의 반대편을 잡고 힘껏 밀었던 탓에 기린과 인간의 악력 차를 견디지 못한 칸막이가 슈코우 쪽으로 그대로 쓰러져왔다. 사관들이 손을 쓰지도 못할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타이호, 반대입니다!”
“어?”
“종백님!”
슈코우의 눈앞으로 쏟아지는 칸막이는 마치 순간이 일각인 듯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분명 저 무거운 물건에 덮쳐지고 나면 온몸이 성치 못하겠지.
“흡!”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관절이 구겨지는 것을 느끼며 슈코우는 칸막이에 깔리기 직전 눈을 질끈 감았다.
“...?”
각오를 단단히 다졌건만 이상하게 한참이 지나도록 무언가에 깔리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그머니 눈을 다시 뜨고 보니 눈앞에 큰 덩치의 남자가 한 명, 그 무거운 칸막이를 붙들고 한 손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거 참. 오랜만에 왔는데 오자마자 사고 수습인가?”
“소류?”
“폐하!”
* *
왕은 천명을 받아 신적(神籍)에 오르고 왕이 임명한 관리들은 신선이 되어 선적(仙籍)에 오르니 명을 다하는 한 불로불사이며 죽지 않는다. 하늘이 그의 목숨을 보증하고 땅이 그에게 활기를 주며, 사람이 그가 가는 길을 이끄니 나라를 위해 선인이 된 자의 길은 모두 이러한 것이다.
“물론 불로불사라는 얘기가 삔 허리에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몸이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어, 음. 슈코우, 많이 불편하지?”
엔키는 침상에 누워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리는 슈코우 옆에 서서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왕이 돌아왔다는 소리에 헐레벌떡 조회실로 뛰어든 이탄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이해하자마자 바로 어의를 불러 슈코우를 치료했다. 아예 깔리는 것만큼은 피했다 쳐도 그 직전까지 간 것은 사실인지라 놀란 서슬에 허리며 손목 발목이 삐끗해 버린 것이다. 어의의 말로는 최소 닷새는 자리보전하고 누워 요양해야 하고, 거동의 여부는 그 이후에 다시 상태를 봐야 한다고.
“제가 안 도와주셔도 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러긴 했지. 그런데....”
“떨어져 계시라고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난....”
“손을 대셔도 하필 정반대 방향입니까. 힘은 있는 대로 주시고.”
“그게 그러니까....”
“어쩌실 겁니까.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미안.”
거기까지 말씀하시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리한 질책이 이어지자 엔키는 그저 고개를 푹 숙여 사과만 거듭했다. 옆에서 싱글싱글 웃음을 짓던 연왕이 그런 엔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더 깊이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바보짓이야 원래 이 녀석이 바보니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나중에 따끔하게 혼낼 테니 너그럽게 봐주게.”
“궁에 잘 돌아오시지도 않는 분께서 용케도 ‘나중’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오신 게 거의 반년 만이라는 건 아십니까?”
“허허, 이거 참. 몸이 상하니 혀에 날이 돋는 일도 드물지야 않겠다마는.”
슈코우의 트집이 엔키를 넘어 자신에게 향해도 연왕은 대수롭지 않게 그의 말을 받아넘겼다.
“어차피 오백 년간 별로 쓸 일도 없던 허리이니 그냥 이참에 나을 때까지 푹 쉬도록 하게.”
“폐하! 현실적인 문제 이전에 자존심의 문제란 말입니다! 악!”
“그거 보게. 야단을 떠니 더 아프지 않은가. 좌우지간 현실적으로 쓸 일이 없는 허리라는 건 부정하지 못하는군?”
“폐하나 저나 독신인 건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쓸 일이 있고 누구는 없고 할 일입니까?!”
“어허. 종백이여. 같은 처지라니.”
길어지는 말싸움에도 활기차던 왕의 눈초리가 남자의 자존심 앞에서 한기를 띠기 시작하자 그제야 슈코우는 남은 말을 삼키고 조용히 침구 등에 허리를 기대었다.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고 말싸움을 늘였다가는 직무권한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생사 문제로 골치를 썩이게 될지도 모른다.
“흠, 흐음. 전 환자이니 그만 쉬겠습니다.”
누운 김에 눈도 딱 감고 최대한 숨도 쉬지 않는 척을 해보았다. 환자 이전에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시체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좋아.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몸조리 잘하도록.”
“아,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뭐지?”
“이 사단을 내신 책임을 좀 져 주셔야겠습니다.”
“사단을 낸 건 내가 아니라 이 바보인데?”
“안 됩니다. 예로부터 기린과 왕은 한 몸이라 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마저 수습하셔야겠습니다.”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던 연왕은 단호한 슈코우의 어투에 잠시 멈추어 그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슈코우가 허리가 땅기는 것을 감수해가며 묵묵히 그 시선을 받아내고 얼마간이 흐른 후, 이윽고 연왕은 다시 침대 곁으로 다가와 짐짓 난폭하게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얘기를 들어 보지.”
“감사합니다.”
“말해두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라면 안 맡을 거니까.”
“저기, 그럼 나는 가도 되지?”
“이 바보가, 이리 와라. 어딜 도망치려고.”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엔키의 목덜미를 낚아채 옆자리에 놀러 앉힌 연왕은 허리를 죽 펴고 정자세로 슈코우를 보았다. 워낙 체격이 큰 편인데다 반쯤 누워 있는 자세의 슈코우다 보니, 어떻게 보아도 내려다보는 시선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거대한 그의 왕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내심 긴장이 된 그는 말을 꺼내기 전에 침을 꿀꺽 삼켰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제 푸념을 좀 들어주십사 하고요.”
“허?”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연왕을 못 본 체한 슈코우는 말을 이었다.
“오늘 조회에 민감한 사건이 하나 올라오는데 제 몸이 이-모-양이라 말입니다. 몸이 엉-망이라 그런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되니 제가 하는 얘기를 좀 가다듬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음.”
“서남부 지방의 보부상이 한 명 있었습니다. 벌이가 신통찮아 마차도 말도 없이 홀로 떠도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안국의 국민이니만큼 먹고 사는 일에 크게 곤궁할 정도는 아니었지요. 계절을 따라 방물을 이것저것 팔며 입에 풀칠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군.”
“다행히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 결혼을 한 지 어언 오 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아이를 가질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마을의 리목에 부부가 함께 가 아이를 빌고 끈을 묶었습니다. 하늘에서 보답을 받아 일 년 후에는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지요.”
“잘된 일이 아닌가.”
“네. 세 돌이 되도록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조금 신기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만을 쏙 빼닮은 아이의 소문을 듣고 열흘 거리의 마을에서 어떤 모자(母子)가 찾아왔습니다. 그 아들도 역시 세 돌이었는데 내내 어머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더군요.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래지 않은 대화 끝에 그들의 남편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였다던 벌이는 사실 두 집 살림을 하느라 그랬던 거지요.”
연왕의 옆에서 엔키가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상호간 인지되지 않은 중혼은 나라에서 금하고 있으니 당연히 남자는 체포되었고 옥에 갇혀 있습니다만, 그간 몰래 중혼을 한 상태에서 아이를 받은 적은 없어서 말입니다. 처벌을 어떡해야 할지 해당 지방에서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 이렇게 중앙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간은 중혼죄에 대해 보상금을 낸 뒤 부역을 하거나 태형을 받는 정도이고 그 정도면 피해자들도 나름 납득하고 마무리되어 왔는데, 아이의 어머니들은 하늘이 어찌 이리 무심할 수 있느냐며 차라리 남자의 사형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사형이 될지 어떨지는 둘째치고 실제로 시행한다 해도 꽤나 오랜만의 일이 될 것 같다 보니 어찌 되었든 논의가 길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골치가 아프군요.”
여자 둘과 몰래 결혼하고도 뻔뻔하게 양쪽에 다 아이를 빌러 간 남자의 죄는 물론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자들의 고통은 남자의 죄를 천제께서도 알고 계셨을 것인데 어찌 아이를 주셨는가 하는 데에 있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것인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 한탄이 도성을 울렸다. 하늘은 왜. 내게 왜.
연왕의 치세 오백 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태평성대에 벌어진 새로운 죄는 구설이 되었다. 나라의 행방에 의심은 할 수 없었으나 의문이 생겼다. 도무지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하여 부상이 아니더라도, 슈코우는 왕이 오실 때까지 이 안건만큼은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질질 끌고 있을 참이었다. 그의 왕은 그것을 짐작한 듯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어이. 어차피 어떤 방법으로든 나한테 미룰 심산이었겠지?”
“말씀드렸다시피 그냥 환자의 푸념입니다.”
“닥쳐라.”
상스러운 투로 욕을 뱉은 연왕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질문을 던진 것은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어하던 엔키였다.
“그 개자식은 뭐래? 변명 같은 건 안 해?”
“뭐, 떠돌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입니다. 중혼은 본능대로, 아이는 되는 대로 했을 뿐이라나요.”
“엄청 뻔뻔하잖아!”
“그런 인간이 아니라면 죄를 지을 리가요.”
“뭐 그렇긴 한데.”
태평성대라 해서 죄인 없는 나라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나라에도 원래 인간의 욕심과 오해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것이고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왕과 기린이 옳은 길로 이끄는 한 나라는 잔잔한 상태로 다시 돌아올 힘을 가질 뿐.
슈코우와 엔키가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하는 동안에도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이 없던 연왕은 이윽고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난 슬슬 일어날까.”
“네에?!”
“뭘 그렇게 놀라는지 모르겠군. 푸념을 들어 달라 했잖은가. 이 정도면 들어줄 만큼 들어줬다고 생각한다만?”
“아니! 그게, 에 또...그러니까....”
연왕은 말을 잇지 못하고 금붕어처럼 입을 끔뻑이는 슈코우를 향해 씩 웃었다.
“오늘 성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 어이, 바보 엔키.”
“응? 나?”
“그래. 네가 할 일이 있다.”
“뭔데?”
“이탄에게 가보면 내가 맡겨 둔 물건이 하나 있을 거다. 그걸 최대한 빨리 경왕에게 전해주고 와.”
“경왕? 갑자기 왜? 그리고 왜 내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엔키에게 연왕은 말을 이었다.
“너한테 맡기는 게 가장 정확할 테니까.”
“왜 맡기는 걸로 정해진 거야? 네가 타마로 가는 게 제일 빠르지 않아?”
“지금 나는 좀 사정이 있어서.”
“야, 사실은 귀찮은 거 아냐? 뭔데 그래?”
“중요한 거다. 꼭 경왕에게 직접 건네.”
“엥, 직접 줘야 하는 거야? 그럼 그냥 네가 가지? 실수로 잘못 전달이라도 하면 어쩔 건데?”
“그런가. ...확실히, 실수하면 곤란하군. 그럼 금파궁 정문으로 가라.”
“에엑?!”
난데없는 연왕의 선언에 엔키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고작 물건 하나 전하는 데 경국의 주성 전체를 들썩거리면서 번거롭게 들어가라고?! 그렇게는 싫어! 나 안 가!”
“엔키.”
진지해진 목소리에 엔키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본시 기린은 왕에게 거역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엔키가 연왕을 놀리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왕이 엔키에게 그 정도의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왕이 기린에게 진정으로 명령했을 때 그 내용이 무엇이건 그 왕의 기린이 그것을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진심이 연왕에게서 배어나왔다.
“소류 너...진짜로?”
“더없이 진심이다.”
“하아.”
엔키는 부담감을 덜어볼 겸 크게 한숨을 한 번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면 돼?”
“그래. 오늘 내로만 가면 괜찮을 거다.”
“알았어.... 갔다 올게.”
고개를 숙이고 떠나는 엔키를 눈으로 마중한 연왕은 다시 슈코우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슈코우.”
“아, 눼, 아니, 넷?”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슈코우는 저도 모르게 약간 얼빠진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두 모자는 기왕에 살지 않던 다른 곳이되, 같은 동네로 이주시켜 집과 땅을 주고 함께 이복형제로 살도록 만들어 주어라. 아이들에게는 이전의 성을 대신해 ‘세사내’의 가문을 주겠다.”
“세사내...?”
“그래. 봉래에서의 내 두 번째 이름(三郞)을 이곳 식으로 읽은 거지.”
“폐하의 이름을...내리십니까?”
“안될 것 있나?”
“아뇨, 물론 그렇게 해주신다면 어미들은 당연히 기뻐할 것입니다만.”
봉래에서의 허명(虛名)이었을지라도 왕의 이름을 받는다고 하면 이들을 업신여기는 자는 없을 것이다. 집과 땅이 있다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늘을 원망할 이유는 사라진다. 이런 사는 방식도 있다며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럼, 죄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까진 내가 알 바 아냐.”
글쎄, 하고 어깨를 으쓱한 연왕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시다는 건, 죄인조차도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본능대로 되는 대로 사는 이라면 나라조차 가질 필요 없지 않을까? 아, 허해에 사는 민족하고는 마음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연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한 뒤 허해로 추방하라는 간접적인 선언이었다. 원래 하던 일이 얼마나 거친 일이든 간에 야생의 요마가 날뛰는 허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일반인은 만 명 중 하나도 채 못 된다. 직접 죽이라는 이야기가 아닐 뿐 실질적으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알겠습니다.”
슈코우는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한순간 잊은 채 왕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소문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왕 없는 행정체계로 몇백 년이나 지속되어 온 안국은 신기한 나라라고 일컬어진다. 왕은 그저 하늘에서 내린 대리인일 뿐 실제 왕의 자격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나라라는 말도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의 소견일 뿐. 모르는 길을 가야 할 때 그 어느 나라보다도 왕에게 기대는 나라가 바로 안국이다. 그의 왕은 어디인지로 모를 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한낱 부평초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도, 나라가 자신을 원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놓치지 않는다. 많은 고민 끝에 놓인 책임을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홀로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왕은 자신의 길을 엇나가는 법이 없어 신하 중 누구도 그의 모습을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분. 왕좌에 놓인 칸막이가 왕이 계실 때라도 움직이는 법이 없는 이유는 진정 그것이었다.
“그럼 나머지는 맡겼다.”
“바로 떠나십니까?”
“엔키가 제대로 돌아오는 것만 보고 갈 거다. 모레까진 안 있을 테니 일은 적당히 떠넘기도록.”
“내일 조회만이라도 참석해 주시면....”
“거절이야.”
연왕은 어림없다는 의미를 담아 손을 저은 뒤 일어나 방을 나갔다.
* *
엔키는 결국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경국에서 돌아왔다. 원래라면 이틀이나 걸릴 거리는 아니었지만, 공식적인 방문 절차를 밟느라 하루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궁 안쪽 정원에서 나뭇가지 몇 개를 잘라내고 있던 연왕은 다가오는 엔키를 반갑게 맞았다.
“여어. 수고했다.”
“잘 전했는지는 안 물어봐?”
“얼굴 보니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군.”
“그럭저럭. 그냥 꽃나무 분재 하나던데, 그거 하나로 일을 왜 그렇게 거창하게 만들어?”
“미안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흥.”
뚱한 표정으로 잘린 가지를 내려다보던 엔키는 잠시 후 볼멘소리를 냈다.
“야, 너 어제 나 내보내고 슈코우랑 뭐 했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얼버무리지 마. 그 중혼범에게 허해로 추방령을 내렸다며?”
“오늘 조회에서 그러기로 했다고 하더군. 난 빠졌다만.”
“안 갔다고 다가 아니잖아! 네가 결정했지? 아무리 죄인이라도, 허해로 내보내면 죽을 거 알면서!”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멍청아! 그래서 어제 날 내보낸 거야? 사형 얘기를 하려고?!”
엔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린은 자비의 생물이라 만물의 생명이 소중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뭇가지 하나가 다 소중한 기린에게 사람의 목숨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죄인일지라도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기린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하물며 연국은 마지막으로 사형을 시행한 지 이백 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엔키가 연국 내에서는 사형 선고가 더는 없을 거라며 긴장이 풀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연왕은 엔키의 항의에도 무슨 바람이 부느냐는 듯 심드렁했다.
“앞뒤를 헷갈리지 마라, 바보가.”
“뭐?!”
“널 빼고 얘기하려던 건 덤이다. 경왕에게 그걸 전해주는 게 핵심이었고.”
“에....?”
“다시 말해, 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 얘기는 그대로 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연왕은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던 나뭇가지를 다른 손에 든 가위로 가차 없이 끊었다. 딱 소리와 함께 엔키의 몸이 움찔하고 튀어 올랐다.
“하지만 백성은 네...!”
“그래, 내 몸이고 내 생명이지. 아니 내 목숨 따위보다는 백성이 더 소중하다. 하지만 고름은 빼야 해.”
왕에게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생명이란 기린과 달리 나라 전체의 존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숲을 보다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로 나무를 뽑아야 한다. 나무를 오래 살리기 위해서는 어설프게 자란 가지를 쳐내야 한다. 왕은 나라를 상대로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기린이 아무리 잎을 남겨달라 울어도, 그것이 얼마나 짙푸른 잎사귀라 할지라도, 그 잎 때문에 나무가 마른다면 왕은 그것을 떼어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것이 왕의 길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기회를 줬다. 알 만큼 아는 녀석이 징징거리지 마.”
만 명에 하나라 해도 허해에서 살아갈 기회는 있었다. 요마도 가축으로 치는 안국 출신이라면 확률이 조금 더 높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아 태생이 안국인 견랑진군이 다스리는 마을까지 기어들어 가는 데 성공한다면 생존 자체는 보장받을 가능성이 컸다. 범죄자를 타국에 함부로 떠넘길 수도 없으니 최대한도로 배려한 결론인 셈이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으나 의외로 엔키는 수긍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웬일로 이해가 빠른데.”
“아니, 어제 경국을 가보고 조금 생각한 바가 있었달까.”
“허?”
바닥에서 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올리던 연왕이 엔키를 향해 눈썹을 찌푸렸다.
“경국에 무슨 일이라도? 수해가 난 건 알고 있다만.”
“케이키한테 네가 경왕한테 뭐 잘못한 거 아니냐고 캐물었는데,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더라고.”
“뭐야 그건. 난 딱히 잘못한 일 없다.”
“분명 뭔가 저질렀을 텐데, 순수하게 널 그렇게까지 믿을 수 있는 생물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 좀 반성했어. 나도 좀 더 믿어줘야지 하고.”
“잘못한 게 없다니까? 저질렀다는 건 또 뭐냐.”
“그러니까-고작 분재 하나 자기 손으로 직접 못 주는 꼴을 보니, 아무 짓도 안 했을 리는 없다는 말이지.”
“윽.”
연왕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말없이 손에 든 나뭇가지와 가위를 정리하는 바구니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두 손을 탈탈 부딪쳐 손에 붙은 잎사귀와 흙먼지를 털어낸 후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너, 경왕한테 뭐 했니.”
엔키의 물음에도 연왕은 답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여유로움과는 전혀 다른 빛이 있었다.
연왕 소류는 오백 년 치세에서 단 한 번도 의사결정에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걸어야 하는 길이 너무나 뚜렷해 보인다고 했다. 봉래에서조차 거침없는 세월을 지났던 그다. 만일 결정에 시간을 끄는 일이 있다면 그건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지, 결정이 달라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엔키는 오늘 처음으로 그가 무언가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았다.
“...싫어하더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기린이 아니었다면 자칫 못 듣고 흘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답을 구하는 질문인 것은 확실했고 엔키는 크게 도리질했다.
“아니. 손바닥만 한 돈벌레 보듯 피하긴 했는데, 싫은 기색은 아니었어.”
“그래.”
손을 입가에서 치우지 못한 채 우물거리는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나왔다. 마치 무언가를 삼키는 것처럼 목젖이 한 번 오르내린 후, 연왕은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싫어하지 않으면 됐다. 시간은 많으니까.”
마음은 허해에 던질 수 없으니, 생겨난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그 입가에는 얇게 웃음이 걸려 있었다. 즐거운 듯한, 장난스러운 눈동자에 엔키의 몸이 무심코 부르르 떨렸다.
소류가 아직 엔키의 왕이 아니던 시절 그는 이미 아이가 있는 기혼자였다. 태각의 껍질을 쓰고 태어났다 해서 그의 앞에 놓인 길을 벗어날 이는 아니었던지라 그는 바르게 자랐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하니, 백성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가정을 꾸려야 하므로 아비가 어여쁘다 하는 처자를 맞아 결혼도 했다. 대를 이어야 하니 아이도 만들었다. 단 처가 낳았으되 그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길을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걸어야 하는 길에 처와 아이가 필요하다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은 것이다. 다만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재량껏 했을 뿐이었다. 처는 용케도 아이의 아비이자 동시에 할아버지가 되는 이로 상대를 잘 골라, 태어난 아이는 그의 껍질을 다소나마 닮아 있었더랬다.
“야...너 진짜 뭐한 건데.”
왕이 된 후에도 창관에 얼마나 처박혀 있든, 거리의 여자와 그 어떤 수작을 주고받든 거기에 마음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본디 반신으로서 마음을 나누는 왕과 기린의 사이다. 오백 년 치세에 그의 심장이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남의 생각을 파악하는 데는 귀신같은 그가 고작 여자 한 명에게 휘둘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마도 그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대란, 고작해야 타국의 왕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길 위에 처음 놓인 연모의 감정이 아닌가.
“고백하고, 입 맞춘 것뿐이다.”
“하?”
엔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하긴 술 마신 뒤라 때가 좀 안 좋긴 했군.”
“진짜냐? 네가? 정말로 오백 년 만에 첫사랑?”
“시끄러워.”
어느새 평소의 상태로 돌아간 연왕은 옆에 놓인 바구니를 집어 들고 엔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정리만 마치면 다시 떠날 거다. 넌?”
“난 슈코우가 나을 때까지는 왕궁 일을 도와줄까 하고.”
“책임지는 자세는 훌륭한데, 사고는 더 치지 마라. 최소한 석 달은 안 돌아올 거니까.”
“너나 잘하셔-. 그럼 이제 꼬시러 가냐?”
“뭐, 그렇지.”
“좋아! 나한테 떠넘기지 말고 용감하게 사랑한다고 말해! 그리고 제대로 차이라고!”
“왜 거절당하는 게 전제야.”
그럴 리 없겠지, 하고 투덜거리며 멀어지는 발걸음을 엔키는 한동안 바라보았다.
자신의 왕은 언젠가 이 나라를 멸망시킬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그 예감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백성에게 자신을 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였고 필요할 경우 스스로를 던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지킬 것이 있는 한 그는 눈앞의 길에서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지간한 왕조차도 버티지 못한다는 삼백 년을 넘어 오백 년에 이른 소류의 손에 놓인 무게는 일국의 명운을 넘어 존폐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그가 실도를 선택한다면, 안국은 사라질 것이다. 외길을 걷는 이의 일탈이란 그런 것이니까.
“시간은 많다, 이거지....”
그의 한계는 어디일까. 완전한 소진은 언제쯤 다가올까. 지금의 나라는 태평성대이지만, 동시에 다가올 멸망은 불안했다. 예의 중혼 사건으로 신하들이 술렁거렸던 것은 그 의미를 짐작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엔키는 앞으로의 긴 시간을 담보하는 그의 마음에 반신으로서든 신하로서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건대 두 왕이 행복하게, 길고 오랜 시간을 공유하기를.
“뭐, 슈코우가 다 나으면 간만에 코우야라도 만나러 가볼까나.”
연왕이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잎사귀 하나를 살짝 주워들면서, 엔키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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