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이 지구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바퀴벌레. 인간이 간신히 살 수 있는 정도의 환경에서도 바퀴벌레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살 수 있다.
  설사 무중력과 중력이 오락가락하는 전투함일지라도 거주 구역은 거주 구역. 여성들의 자존과 전자제품의 보호를 위해 바퀴벌레 퇴치가 필요한 법이다.(둘 중 어느 쪽이 우선인가는 따지지 말자. 후자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용기가 있는 남성 동지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하여 시작된 바퀴 잡기. 소독용 연기를 솔솔 피워 놈들을 마취시킨 끝에 질식하게 만든 뒤 진공 청소기로 윙윙 돌리는 일은 몇 시간이고 이어진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거주 구역에 방이 있는 이상 그 일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어느 날 카미유가 아가마의 브리지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카츠를 둘러싸고 갹갹거리는 신타와 쿰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카미유! 이거 봐! 신기해!"
  "신기해! 신기해!"
  "이거 봐요, 카미유."

  신타와 쿰의 손에 이끌려 다가가자 카츠는 그의 앞에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곽을 하나 내놓았다. 그것도 꽤나 자랑스럽게.

  "그냥 바퀴벌레잖아?"
  "잘 보라구요."

  카미유는 호기심에 약간의 불쾌감을 무릅쓰고 바퀴벌레를 잡아먹을 듯이(...)살펴 보았다.

  "...다리가 네 개?"

  바퀴는 곤충류에 속한다. 고로 다리가 여섯 개다. 거기다 바퀴는 3억 년에 걸친 생존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잘 살아 왔다. 새삼스럽게 진화를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돌연변이죠."

  카츠가 딱 잘라 그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카미유 방에서 청소기를 돌렸는데 이게 나오더라구요. 게다가 아직 살아 있어요."
  "카츠, 너 곤충채집에 취미가 있었어?"

  카미유가 약간 놀라 물었으나 카츠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신기해서 잡아본 거죠. 여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어떻게 할까 이 녀석들하고 의논 중이었어요."
  "나 줘! 물에 넣어볼래!"
  "안돼! 이런 건 태워야 된댔어!"
  "의견일치를 보라고 그랬잖아."

  카츠가 신타와 쿰을 가리키자 카미유의 출현으로 잠시 주춤했던 꼬마들은 카츠 옆에 매달려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카츠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꼬마들의 열띤 논쟁을 거들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카미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술을 꽉 깨물더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꽤나 갈고닦고 있던 정권으로 카츠와 꼬마들에게 가차없는 주먹을 날렸다. 예상도 못한 주먹이었기에 세 명은 영락없이 뒤통수에 한 방씩을 퍽퍽 맞고야 말았다.

  "우왁!"
  "아파!"

  신타와 쿰이 머리를 붙잡고 나뒹구는 사이 카미유는 묵묵히 카츠에게서 플라스틱 상자를 빼앗아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카미유! 아직 살아 있다니까요!"

  카츠가 항의했지만 카미유는 열이 오른 눈으로 카츠를 쏘아보았다.

  "무슨 장난을 이 따위로 하는 거야!"
  "어때서요?! 별 일도 아닌데!"
  "맞아!"
  "그냥 벌레야!"

  카미유는 설명을 요구하는 3인분의 매서운 눈빛 공격을 받고 순간 멈칫 했다. 사실 별 일 아니기는 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난폭한 장난에 자신이 끼어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인간의 잔인성? 잘못된 교육 환경? 아니다.
  정말 화가 났던 것은...그는 망설였다.
  뭐라고 말하면 좋지? 그 바퀴벌레를 물에 빠뜨리고 불에 그슬려 죽이겠다는 아이들의 미소가 왜 전장 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살기보다도 끔찍하게 느껴졌는지를 어떻게 설명하지? 벌레를 가두어 놓고 자랑스러워하는 소년이 생체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처럼 징그럽게 보였던 이유를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다리 숫자도 모자란 바퀴벌레 한 마리와 갑자기 동질감을 느꼈던 것을, 도대체 누구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괴롭히지 마. 특별하다는 이유로 날 죽이려고 하지 마!
  카미유는 혼란스러웠다. 결국 그는 손가락을 들어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대답을 기다리는 여섯 개의 눈동자를 향해 소리쳤다.

  "저 바퀴벌레와 나는 똑같단 말이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말을 꺼낸 직후였다.

                                                  *                                   *

  그로부터 거의 열흘 가까이, 카미유는 지저분하다느니 쓰레기를 좋아한다느니 하는 소리와 함께, 심지어 다리가 네 개라는 꼬마들의 놀림까지 받아야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2009/02/10 15:45 2009/02/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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