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ierra

from Fanfic/Gundam 2009/02/10 16:01
  아마도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설문 준비는 다 마치셨나, 대령?”
  “흐음.”

  오오. 사소한 도발에 응수하지 않는 저 여유로운 자세라니.
  일부러 꺼낸 것인지 실수인지 알 듯 말 듯한 아무로 레이 대위의 ‘대령’이라는 호칭에도, 크와트로 바지나 대위는 콧소리를 한 번 냈을 뿐 일절 응수를 하지 않았다. 몇 달 전 비슷한 얘기가 나왔을 적에 자기는 절대 샤아가 아니라며 펄쩍 뛰며 설레발치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잔이 비었다며 손수 발렌타인 50년산의 병을 들어 아무로 대위의 컵을 채워 주기까지 했다.
  취기에 진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이 들떠있는 탓일까.

  “하핫, 당신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자네가 발렌타인 50년산을 챙겨온 데 대한 인사다.”
  “뭘 인사까지. 경치 좋은 곳으로 나갈 때 이런 술이 빠지면 안 되잖아.”

  술을 거하게 받았기 때문인지, 아무로 대위도 더 이상의 도발은 삼가는 듯 했다. 대신 얼음과 술이 든 종이컵이 출렁거리도록 두어 번 흔든 다음 입 안으로 술을 더 밀어 넣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추듯 크와트로 대위도 자신의 컵을 얼추 반이나 비워버렸다. 안주로 싸 온 새우깡과 치즈 크래커는 줄어들 꿈도 못 꾸고 있는 와중에 술병의 술은 이미 거의 바닥을 보이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괜찮은데. 창작하느라 바쁘신 와중에 언제 이런 곳을 다 봐둔 거야?”
  “조금 머리 식힐까 하고 브리지에 갔을 때, 마침 이 위를 지나고 있는 중이더군.”
  “헤에. 만 피트 상공에서 지형을 보고 전망 좋은 곳을 찍어냈다고?”
  “자네는 안 되나.”
  “시도를 해본 적이 없어.”
  “자네라면 어렵지 않을 텐데.”
  “글쎄, 잘 모르겠는 걸.”
  “게으르군.”
  “남 말할 처지냐.”
  “내가 왜? 이래 뵈도 에우고 최강의 부지런남이다.”

  콜록.
  마침 컵을 입으로 갖다 대던 아무로 대위는 크와트로 대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잔기침을 해댔다.

  “대위...취했나.;”

  급하게 주워섬긴 호칭으로 조금 전 대령이라고 불렀던 사태는 완전히 무마되었다. 허나 크와트로 대위는 그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종이컵을 높이 올려 소리 없는 브라보를 외쳤다.

  “겨우 이 정도로 취할 리가. 생각해봐. 나는 작전 짜고, MS 조종도 하고, 정비까지 돕고 있어. 거기다 내일 모레는 연설문 써서 정치가 행세까지 해야 해. 어디를 봐서 게으르다는 건지 모르겠군.”
  “최강의 부지런남이 워드 치다 말고 경치 구경하자고 덥석 도다이 끌고 나오나.”
  “너무 한 곳에만 집중하다 보면 휴식이 필요한 법.”
  “어이 어이.”

  주거니 받거니. 안주 대신 오가는 농짓거리로 마시는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가는 중이었다.
  저 인간들이 도대체 뭘 믿고 저런다냐....

  “너무 많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주스 팩의 튜브를 빨고 있던 카미유는 은근슬쩍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킬리만자로를 떠나 온지도 벌써 열흘하고 이틀. 그들이 타고 있는 카라바의 이동기지 아우돔라는 다음 작전을 위해 다카르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시로 이어지는 작전 회의와 정비작업, 추가로 떨어지는 기타 잡무까지 따지면 정말로 눈코 뜰 새가 없도록 바빴다. 게다가 내일 모레면 발동될 새로운 작전의 주역을 맡은 크와트로 대위는 누가 쓸데없는 일로 말을 걸면 버럭 화를 낼 정도로 쌓여만 가는 업무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닌지라 카미유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비작업을 보조하면서 되도록 크와트로 대위와는 말을 섞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작전 회의 때도 의견을 말하거나 하는 일은 가급적 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바로 한 시간 전, 크와트로 대위가 ‘따라오지’라는 말과 함께 덥석 카미유를 데리고 한 도다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뭔가 커다란 꾸러미를 들고 있는 아무로 대위도 있는지라 카미유는 또 뭔가 작전회의 거리가 생긴 거라 여겼다. 허나 도다이를 몰고 아우돔라를 뛰쳐나와 도착한 곳은 그저 멀리 바다와 가까이로 녹색 산이 어우러진 전망 좋은 곳일 뿐, 작전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에우고와 카라바의 주역 두 사람이 이런 사고를 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알고 보니 준비도 꽤나 단단히 한 듯, 아무로 대위가 든 꾸러미 속에서는 과자며 버터구이 오징어 같은 안주거리에서부터 언뜻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양주까지 두 병이나 튀어나왔다. 분명 하야토 기장이 꼼꼼하게 챙겨둔 것을 몰래 빼돌린 것이리라.

  - 이건 농땡이도 보통 농땡이가 아니잖아!

  카미유의 소리 없는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두 사람은 술판을 접고 돌아갈 생각이 없음이 분명했다. 거의 다 마신 양주병을 치우고 다시 새 병의 마개를 따버렸으니 말이다.

  “크와트로 대위도 나도 이 정도로는 안 취하니 걱정은 접어둬. 그러지 말고 자네도 한 잔 해보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미성년자라서요.”

  음주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에 당황한 카미유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으나,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아무로 대위는 종이컵을 직접 손에 쥐어주더니만 금방이라도 그 위로 술을 따를 기세였다.

  “미성년은 술 안 먹나? 나는 열여섯 살이었을 때부터 양주 한 병 정도는 했는데.”
  “자네의 방탕한 기준을 카미유에게 강요하지는 말아 주지 않겠나.”
  “방탕이라니, 그거 날 두고 하는 말이야?”
  “열여섯 때 양주 한 병이면 볼 장 다 본 거지. 나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네만.”
  “과연 사관 나리시군. 방탕한 이 몸은 양주 마시면서 LSD 플래시백도 겪어봤다. 어쩔래.”
  “얼마나 가난하면 합성 LSD냐. 차라리 천연 프로카인을 써.”
  “이거나 저거나 엎치나 메치나. 효과도 오십 보 백 보인데 굳이 프로카인을 쓸 게 뭐야. 금괴로 MS 도배할 때 알아봤다.”
  “백식은 도금이 아니라 그냥 메탈 코팅이라고 했잖아.”
  “시끄러. 억만장자씨.”
  “그쪽이 더 시끄럽다. 양아치씨.”

  맙소사. 이미 맛이 갔구만.
  카미유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푸욱 한숨을 쉬었다. 저 정도로 아슬아슬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긴장감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은 분명 취한 것이 맞았다. 저 인간들한테 도다이 운전을 맡겼다가는 하늘의 별이 되기 딱 알맞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갈 때는 내가 운전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무선으로 좌표 점검할 때 기장한테 딱 걸리면 괜히 나만 욕 얻어먹는 거 아냐? 어쩌지? 좌표고 뭐고 그냥 감으로 돌진해버려? 아니 그 전에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도다이에 태울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해. 먼저 가서 시동을 걸어두고.

  “때 되면 알아서 돌아갈 테니 엉거주춤하게 서 있지 말고 그냥 앉지 그래.”
  “아, 네.”

  아차, 들켰다. 쓸데없이 예리하기는. 카미유는 크와트로 대위의 제지에 투덜거리면서도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로 대위도 옆에서 그런 크와트로 대위를 거들었다.

  “그래, 금방 돌아갈 거니까 초조해 말고 경치 구경이라도 좀 해. 근사하지 않나?”
  “괜찮긴 합니다만.”

  굳이 아무로 대위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이곳 풍경이 근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다카르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km가량 떨어진 이 삼각주 지역은 시네-살로움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점차 계속되고 있는 사막화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야생동물의 보고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구역이었다. 최근 사하라 사막에서 일어난 불의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일대가 다소 융기하기는 했으나, 그 점이 오히려 풍경에는 더욱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도다이는 융기점의 꼭대기 위에 서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너른 녹색의 대지 위로 젖줄기 같은 풍요한 강이 흐르며 그 말단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광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물론 카미유가 보기에도 이는 장관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런 풍경을 마음깊이 감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그냥, 여기로 해두는 게 어때?”
  “무얼 말입니까?”
  “묘지 말이야. 그녀의.”

  아무로 대위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선뜻 내뱉은 말에는 그것이 지닌 무게 따위는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다. 아마도 취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카미유가 그 말에 대답하는 데에도 그다지 망설임은 필요치 않았다.

  “글쎄요. 그래도 될까요. 한참 전에 뿌렸는데.”
  “11월에는 바람이 북서쪽으로 분다니까 가능할 거야.”
  “따로 정해 두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어딘가로 한정해 두는 편이 나아.”
  “그럴까요?”
  “보증하지. 이 땅을 그녀에게 주게.”

  크와트로 대위의 말에도 역시 무게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말을 마치는 즉시 컵을 쭈욱 비우고 머리 위로 탈탈 터는 모습은 이 모든 말과 행위가 단지 취기에서 오는 행동이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그리고 아무로 대위 역시 그 의도에 발맞추듯 병을 들어 다시 두 사람의 컵을 그득히 채워 놓았다.

  “얼마 안 남았나...하기사 이제는 슬슬 취하기도 하니까 뭐.”
  “두 잔씩만 더 하면 바닥나겠군.”
  “그나저나 이거 하야토가 다카르 작전 끝나면 마실 거라고 챙겨둔 건데, 어떻게 넘어가지.”
  “자네가 꺼내보다가 병을 깨먹었다고 해.”
  “안주는?”
  “아우돔라 안에 쥐가 있는가보지.”

  오가는 수많은 농담에도 소년은 웃지 않았고, 건드리면 터질 거라 생각했건만 소년은 용케도 울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처음 그녀의 시신을 안고 아우돔라로 들어온 이후 카미유는 포우 무라사메라는 이름의 소녀를 위해 그 어떤 자발적인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시신을 떼어 내 수습해서 부검하고, 염한 뒤 화장해서 아우돔라 밖으로 뼛가루를 뿌릴 때까지도 그는 남이 하자는 대로 말없이 따랐다. 죽자사자 부검을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기내 의사는 그 덕에 한시름 덜었다며 대놓고 하야토 기장을 향해 웃음을 보였다 했다. 옷과 살을 태우고, 결국은 그녀의 흔적이 허공으로 허위허위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카미유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울지도 슬퍼하지도, 심지어는 한 마디 토를 달지도 않았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검은 눈동자의 시선은 그저 희끗한 자욱이 흘러가는 바람결을 따라 갈 뿐 아무런 감정의 빛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근 팔일 가량을 정비창에 처박혔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채 백식 옆에서 먹고 제타 안에서 조각잠을 잤다. 작전 회의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형식적. 회의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부품 규격을 백지에 끄적거리다가, 해산 명령이 떨어지면 그제야 옆 사람에게 결론이 뭐냐고 물어보고는 다시 기름에 쩐 목장갑을 끼었다.
  여유가 있을 때였다면 누군가 나서서 닥치고 잠이라도 좀 자라고 말리기라도 했겠지만, 킬리만자로 작전 이후 또 불벼락처럼 연달아 떨어진 다카르 작전 때문에 스스로 발 벗고 도와주겠다는 손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카미유는 아무의 제재도 없이 여드레 동안 하루 한 시간도 잠을 안 자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나마 그 사실이 알려진 것도 작전회의 때 볼살이 쑥 내려앉은 카미유의 얼굴을 본 하야토 기장이 정비반장을 채근해서 여섯 시간 만에 근무자 리스트를 받아낸 덕이었다.
  기장은 리스트를 보자마자 연설문 작성에 여념이 없던 크와트로 대위를 불러내 통사정을 했고, 대위는 아무 말 없이 정비창으로 달려가 여전히 배선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소년을 끌어내 수면제 세 알과 함께 제 방에 열두 시간 동안 감금했다. 지독한 수면 부족에도 두 알 이상 처방이 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강도 높은 처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시간 후 작전 회의에 다시 들어온 소년의 눈은 여전히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쥐라고 우긴다? 괜찮은데.”
  “괜찮고말고.”

  버티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바쁘게 보내는 것은 때로 상처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몸에 나쁜 법이니 잠을 못 자서 신체 건강에 위기가 올 정도로 일에 미치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은 짓이다. 하여 두 사람은 하야토 기장의 묵인 하에 그를 밖으로 끌어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곳이니까,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래.”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될지 어떨지.”

  소년이 망설이는 것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순간 이후,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려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그녀가 입던 옷은 티탄즈의 복장이었다. 그러나 그와 사랑을 속삭이던 마지막 순간에 입었던 옷이었다. 그녀의 몸은 무라사메 연구소의 실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하늘을 나는 바람을 기꺼워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그녀의 진짜 인격인지 실험에 의해 조작된 취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그냥 묻어야 할까, 아니면 태워서 날려 보내야 할까.
  망설이고 있던 사이에 주변 사람들이 모든 사항을 결정해 버렸다. 그 자신으로서는 결심할 시간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죽어버린 그녀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했지만 조각난 심장을 씹어 삼키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말의 여유도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건 이 고통이 어떤 감정인지 헤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악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소년에게 두 사람의 제안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어차피 흔적도 없이 사방을 향해 사라진 그녀의 파편이다. 여기쯤 머물러 있다고 생각해 버려도 손해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묘비도 세워 주지 못했다. 글 한 자락 새겨 주지 못했다. 멀리 떠나보내면서 곡소리를 내지도 못했다...그러니 무덤 자리 하나 잡아준대도 나쁠 것은 없다.

  “아무로 대위, 좀 조심해서 따라.”
  “어라, 쏟아버렸다. 진짜로 취했나...정말 한 모금이라도 안 해 보려나, 카미유?”
  “도다이 조종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약간 취해도 비행기 정도는 운전할 수 있잖아.”
  “자네와 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혀 꼬였어, 대령.”
  “자네는 뭐....”

  마지막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크와트로 대위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점점 목이 아래로 꺾였다.

  “쳇, 약하군. 나이 먹으면 어쩔 수 없다니까.”

  아무로 대위는 툴툴거리며 크와트로 대위의 어깨를 부축해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로 대위의 걸음걸이도 그렇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한쪽 팔로 크와트로 대위를 부축하면서도 다른 쪽 손을 크게 저어 카미유의 도움을 거절할 정도의 정신은 있는 듯 했다.

  “돌아가시겠습니까?”
  “이렇게 취해서 들어가면 아우돔라가 뒤집어질 걸. 좀 깨고 가지.”
  “알겠습니다.”
  “딱 한 시간만 잘 테니 기다려 줘. 미안하지만 뒷정리도 좀....”
  “네.”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아무로는 짐짓 카미유의 얼굴에서 눈을 돌린 채 피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울어.”
  “네?”
  “여기라면 아무도 없어...울어라. 나는 이쪽과 같이 도다이에 가서 눈 좀 붙일 테니.”
  “...대위?”
  “생각해 봐. 둘이서 양주 두 병이야. 우린 아마 필름이 끊길 거다.”

  무표정했던 카미유의 눈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괜찮습니다. 생각해 주지 않으셔도.”
  “뭐 명령하는 건 아니야. 어쨌거나 우린 좀 쉬어야겠어. 안에는 술 냄새가 지독할 테니 경치 좀 더 보고 들어와.”
  “...네.”

  그리고 아무로 대위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크와트로 대위의 팔을 잡고 한 걸음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낑낑대며 도다이 안에 마련된 임시 의자 위로 사람을 눕히려 하는 찰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잘 달래는군.”

  그 목소리에는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었다.

  “당신도. 취한 척 잘 하던데.”
  “아아. 좀 어지럽긴 해.”
  “나도 마찬가지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자두는 게 어떨까.”
  “그거 좋지. 어차피 필름이 끊어지기도 해야 하니....”

  크와트로 대위는 그 말과 함께 벽 쪽으로 몸을 굴려 구석에 처박히면서 팔로 얼굴을 덮어 버렸다. 아무로 대위 역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의자에 머리만 겨우 기댄 뒤 눈을 감았다. 그리하여 이윽고 여기가 네 무덤이라는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소년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와도 그들은 그 자세 그대로 꼼짝하지 않은 채 잠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취기에 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슴이 아픈 탓이었을까.
  아마도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타 건담 극장판 최종화 3편에서 사라질 다카르의 날을 기념하여.
2009/02/10 16:01 2009/02/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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